2024.03.30 (토)
'하명수사'·'선거개입'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피고인은 13명입니다.
대부분의 피고인들은 검찰의 기소에 대해 "무리한 기소에 유감이다", "검찰의 공소장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피고인이 있습니다. 검찰이 전격 기소를 결정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의 진술이 있었기 때문이고, 향후 재판 과정에서도 그의 증언이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사건의 '키맨(key man)'. 바로 박형철 전 청와대 반부패 비서관입니다.
■ 박형철은 다 알고 있었다?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송병기 전 울산시 경제부시장에게 '진정서' 파일을 받아 '범죄첩보서'를 새롭게 만든 문 모 행정관은 2017년 10월경 상급자인 이광철 선임행정관과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에게 보고한 것으로 돼있습니다.
백 전 비서관은 그 무렵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에게 범죄첩보서를 직접 건네며 반부패비서관실에서 범죄첩보서를 경찰에 내려보내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집중적인 수사가 진행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검찰은 밝혔습니다. '울산지역에 파다한 이야기이다, 경찰이 밍기적 거리는 것 같다'라는 취지의 말도 덧붙였던 것으로 공소장에 나와있습니다.
박 전 비서관은 범죄첩보서의 내용을 읽었고, 이 첩보서를 생산하거나 경찰에 내려보내는 게 대통령 비서실 내 어느 부서의 권한이나 업무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심각한 위법임을 충분히 인식했다고 공소장에 적시돼있습니다.
특히 박 전 비서관은 "더불어민주당 측에서 제공한 첩보라고 판단"했지만, 재선 의원 출신으로 청와대 내에서 입지가 굳은 백 전 비서관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해 반부패비서관실 소속 경찰 파견 연락관을 통해 경찰청에 내려보내게 했다고 검찰은 밝혔습니다.
공소장 내용으로 비춰보면, 박 전 비서관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안을 잘 아는 핵심 관계자가 당시 경위를 설명하며 '위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라고 한다면 검찰 입장에선 혐의 입증에 상당 부분 자신감을 갖게 됐을 겁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 자신있게 13명을 기소한 것도 박형철의 진술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변호사도 "송철호 시장이나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등은 처음부터 한 쪽 편이거나 한쪽 편일 수밖에 없는 구도인데 박 전 비서관은 그쪽과 같은 부류는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다른 피고인들은 자기 편에 대한 잘못을 다 얘기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박 전 비서관은 입장이 다르다"면서 "박 전 비서관의 진술이 이 사건에서 굉장히 중요했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 박형철, 경찰 수사상황도 보고 받았다
김기현 전 시장 측근 비리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가 시작된 후 울산경찰청은 2018년 2월 8일부터 6월 13일 지방선거 이전까지 경찰청을 경유해 총 18차례에 걸쳐 청와대에 구체적 수사상황을 보고했습니다. 선거 이후에도 3차례 더 보고했던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습니다.
국정기획상황실 등은 제외하고 박 전 비서관이 근무했던 반부패비서관실에서 받은 보고만 살펴보겠습니다.
①'전 울산시장 비서실장 직권남용 사건' 수사상황 보고서(2018년 2월 8일) ②'직권남용 혐의, 울산시장 비서실장 등 수사상황' 보고서(2018년 3월 16일) ③ 전 울산시장 친동생 변호사법 위반(2018년 3월 17일) ④전 울산시장 친동생 변호사법위반(2018녀 3월 19일) ⑤전 울산시장 친인척 금품수수(2018년 3월 22일)⑥전 울산시장 친동생 변호사법 위반(2018년 3월 29일) ⑦전 울산시장 비서실장 직권남용(2018년 3월 29일) ⑧전 울산시장 비서실장 직권남용(2018년 3월 31일) ⑨전 울산시장 비서실장 직권 남용(2018년 4월 9일) ⑩전 울산시장 비서실장 직권남용(2018년 4월 10일) ⑪전 울산시장 비서실장 직권남용(2018년 4월 23일) ⑫전 울산시장 비서실장 직권남용(2018년 5월 14일) ⑬전 울산시장 친동생 변호사법위반(2018년 7월 4일) ⑭전 울산시장 친동생 변호사법 위반(2018년 7월 10일) ⑮전 울산시장 비서실장 직권남용(2018년 12월 3일)
청와대는 앞서 보고는 통상적이었다면서 대부분 보고는 선거 이후에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11월 국회 운영위에 출석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경찰로부터 9차례 보고 받은 걸 인정하면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남은 수사와 재판...박형철 '입'에 달렸나?
검찰 수사는 13명을 기소로 일단락이 됐습니다. 검찰은 4·15 총선까지는 '숨고르기'에 들어간 뒤, 이후 임종석 전 비서실장과 이광철 비서관 등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기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입니다.
공소장에 송철호 울산시장의 당선을 위해 청와대 7개 비서관실이 각각 업무를 분담해 개입했다고 적시된 만큼 비서관실을 총괄하는 임 전 실장으로 검찰의 칼끝이 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 전 비서실장에 대한 혐의 입증에도 박 전 비서관의 진술이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또, 앞으로 열리게 될 재판에서도 박 전 비서관의 증언에 따라 다른 피고인들과 검찰간 공방의 무게추가 한 쪽으로 기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저는 문재인 정부의 초대 반부패비서관으로서 제 명예를 걸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업무를 수행해 왔습니다. 비위 혐의자의 일방적인 주장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2018년 12월 19일 김태우 전 특감반원과 관련한 브리핑에서 박 전 비서관이 한 말입니다. 박 전 비서관이 향후 어떤 증언을 할 지 지켜볼 일입니다.
[사진 = KBS 보도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