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 맑음속초25.6℃
  • 맑음27.1℃
  • 맑음철원26.2℃
  • 맑음동두천26.4℃
  • 맑음파주25.3℃
  • 맑음대관령24.3℃
  • 맑음춘천27.2℃
  • 맑음백령도16.5℃
  • 맑음북강릉26.2℃
  • 맑음강릉28.4℃
  • 맑음동해24.4℃
  • 맑음서울25.8℃
  • 맑음인천20.1℃
  • 맑음원주25.9℃
  • 맑음울릉도20.2℃
  • 맑음수원23.9℃
  • 맑음영월27.4℃
  • 맑음충주27.0℃
  • 맑음서산23.6℃
  • 맑음울진20.7℃
  • 맑음청주26.6℃
  • 맑음대전27.3℃
  • 맑음추풍령26.7℃
  • 맑음안동28.7℃
  • 맑음상주28.9℃
  • 맑음포항23.8℃
  • 맑음군산19.7℃
  • 맑음대구29.4℃
  • 맑음전주25.6℃
  • 맑음울산24.5℃
  • 맑음창원26.0℃
  • 맑음광주27.2℃
  • 맑음부산21.3℃
  • 맑음통영20.9℃
  • 맑음목포21.8℃
  • 맑음여수23.4℃
  • 맑음흑산도18.0℃
  • 맑음완도26.5℃
  • 맑음고창23.6℃
  • 맑음순천27.0℃
  • 맑음홍성(예)23.9℃
  • 맑음24.7℃
  • 맑음제주21.7℃
  • 맑음고산18.6℃
  • 맑음성산20.7℃
  • 맑음서귀포21.8℃
  • 맑음진주28.0℃
  • 맑음강화19.5℃
  • 맑음양평26.4℃
  • 맑음이천26.7℃
  • 맑음인제28.2℃
  • 맑음홍천27.6℃
  • 맑음태백27.8℃
  • 맑음정선군30.7℃
  • 맑음제천26.2℃
  • 맑음보은26.5℃
  • 맑음천안25.0℃
  • 맑음보령24.9℃
  • 맑음부여27.4℃
  • 맑음금산26.7℃
  • 맑음25.8℃
  • 맑음부안21.3℃
  • 맑음임실25.8℃
  • 맑음정읍24.7℃
  • 맑음남원28.2℃
  • 맑음장수26.4℃
  • 맑음고창군24.9℃
  • 맑음영광군22.6℃
  • 맑음김해시25.2℃
  • 맑음순창군26.8℃
  • 맑음북창원28.8℃
  • 맑음양산시27.5℃
  • 맑음보성군26.0℃
  • 맑음강진군28.6℃
  • 맑음장흥27.9℃
  • 맑음해남26.3℃
  • 맑음고흥28.1℃
  • 맑음의령군29.2℃
  • 맑음함양군29.2℃
  • 맑음광양시27.5℃
  • 맑음진도군22.7℃
  • 맑음봉화27.4℃
  • 맑음영주27.5℃
  • 맑음문경27.7℃
  • 맑음청송군28.4℃
  • 맑음영덕25.6℃
  • 맑음의성29.2℃
  • 맑음구미28.4℃
  • 맑음영천27.9℃
  • 맑음경주시29.9℃
  • 맑음거창28.3℃
  • 맑음합천28.9℃
  • 맑음밀양29.4℃
  • 맑음산청29.0℃
  • 맑음거제26.6℃
  • 맑음남해26.7℃
  • 맑음25.8℃

칼럼&기고

전체기사 보기

우리의 말꼴 글꼴이 위태롭다 / …

영어 문법을 따른 표현도 고쳐야 할 부분

최병요 부회장 프로필 사진1.jpg

우리 고유의 말꼴과 글꼴을 지키는 것은 곧 얼을 지키는 것 외국어는 필요에 따라 정확히 사용, 우리 말글은 더 잘 사용해야 요즘의 방송 매체를 청취하노라면 우리의 말꼴이 심각하게 뒤틀어지고 있음에 아연하다. 유행어나 비속어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 소멸하기에 그다지 괘념할 일이 아니지만, 언어골격의 근간을 흩트리는 상투적인 표현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최병요 한국방송신문협회 부회장 가장 두드러진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렇게 와주시니 감사한 것 같고요.’가 대표적이다. 의당 감사할 일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의중이 엿보이는 표현이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한 것 같고요.’,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시니 감사한 것 같습니다.’ 등의 표현은 별로 고맙지 않다는 뜻으로 들린다. ‘---하도록 하겠습니다.’와 같은 표현도 요즘 가장 많이 사용하는 상투어가 되었다. ‘지금부터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는 시작하기는 하겠으나 꼭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애매한 표현이다. ‘친구로 여기겠습니다.’ 대신 굳이 ‘친구로 여기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아리송하게 표현하는 것은 ‘나의 참뜻은 아니지만, 노력은 해보겠다.’의 다른 표현이다. 영어 문법을 따른 표현도 고쳐야 할 부분이다. 우리 말은 영어와 달리 단.복수 개념과 그 표현방식도 독특하다. 영어는 임자말(주어)의 단.복수에 따라 움직씨(동사)가 변할 만큼 엄격하지만 우리말은 그렇지 않다. ‘꽃피는 봄’, ‘무성한 소나무’, ‘갖가지 생각’처럼 복수 표기를 하지 않아도 복수의미로 쓰인다. 꼭 필요한 경우 ‘온갖 꽃’, ‘빽빽한 소나무’, ‘새떼’, ‘양무리’, ‘온 가족’처럼 표현한다. ‘생각들이 많다’, ‘가족들이 다 모였다’라고 표현하면 그것은 우리말이 아니라 영어를 흉내 낸 표현이다. 영문법의 수동태를 흉내 낸 표현도 어색하다. ‘200년 전에 지어진 건물’, ‘놓여진 다리’, ‘심어진 나무’처럼 표현하는 것은 우리의 말꼴이 아니다. ‘200년 전에 지은 건물’, ‘놓은 다리’, ‘심은 나무’가 되어야 하는데 억지로 수동태를 사용하면 우리말의 고유한 아름다움이 사라진다. ‘~나같은 경우’, ‘우리나라 같은 경우’, ‘전통시장 같은 경우’처럼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말버릇은 아름다운 우리 말을 조악하게 만든다. 패널 등 방송출연자의 말버릇을 고쳐 더 유행되지 않도록 해야 할 말꼴이다. 고유의 말꼴과 글꼴을 지키는 것은 곧 얼을 지키는 것이다. 1940~50년대에는 일본어 한두 마디씩 섞어 쓰는 것으로 우쭐대더니 최근에는 영어 단어나 영어식 표현을 자랑삼아 구사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러나 일어나 영어를 제법 잘하면서도 우리 말 표현이 엉망인 경우를 보면 사실 안쓰러울 때가 있다. 외국어는 필요에 따라 정확히 사용하되 우리 말글은 더 잘 사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최병요 한국방송신문협회 부회장

바흐가 아내에게 바친 선물 / 정…

정태남 건축사.jpg

독일은 남부 가톨릭 문화권과 중부 및 북부의 프로테스탄트 문화권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정태남 건축사 가톨릭 문화권은 마인 강의 남부 지역과 도나우 강 주변이다. 여기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엘베 강의 색채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북해로 흘러 들어가는 엘베 강의 중간 지역에 해당하는 튀링엔, 작센 및 안할트 지방이 바로 프로테스탄트 문화권의 핵심을 이루는 곳이다. 이 지역에 있는 주요 도시로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할레, 비텐베르크, 쾨텐, 바이마르, 에어푸르트, 아이제나흐 등을 손꼽을 수 있는데 이 도시들은 모두 가까이에 있다.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와 바흐 동상. 튀링엔 지방의 작은 도시 아이제나흐 태생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는 생의 마지막 27년 동안은 라이프치히에서 활동했다. 당시 인구 2만의 라이프치히는 권위 있는 대학이 있는 개신교의 보루이자 음악의 도시였으며 해마다 세 번의 유명한 박람회가 열려 많은 인파가 몰려들던 상업의 요충지였다. 라이프치히에서 바흐가 몸담았던 곳은 성 토마스 교회인데 이곳에는 그의 묘소가 있으니 오늘날 클래식 음악 순례자들에게는 ‘가장 거룩한 성소’인 셈이다. 성 토마스 교회 안 바흐의 묘소. 라이프치히에서 북서쪽으로 약 30㎞ 가면 헨델이 태어난 도시 할레가 있고, 그곳에서 다시 북쪽으로 30㎞ 가면 안할트 지방의 쾨텐이다. 쾨텐은 웬만한 지도에는 나오지도 않는 인구 2만 7000명 정도의 작은 시골 도시이지만 바흐의 행적을 찾아보는 여행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바흐는 쾨텐으로 오기 전 바이마르 궁정에서 활동하다가 1717년에 안할트-쾨텐 공 레오폴트(1694~1728)의 궁정의 음악감독으로 초빙됐다. 쾨텐에서 그는 아내 마리아 바르바라(1684~1729)와 4명의 어린 아들과 함께 살면서 여유를 갖고 창조적 재충전을 할 기회를 얻었다. 그것은 21세의 젊은 레오폴트 공이 열렬한 음악애호가였고 또 경건한 칼뱅주의자로 바흐에게 종교음악 작곡을 심하게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흐는 바이마르 시절과는 달리 종교적 요구와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세속음악 작곡에도 전념할 수 있었다. 그는 특히 오케스트라와 오케스트라에 쓰이는 악기를 위해 작곡하는 데 몰두했는데 바로 이 시기에 레오폴트 공 궁정의 저녁음악회를 위해서 여러 협주곡을 작곡했다. 작은 도시 쾨텐의 거리. 1720년 그는 레오폴트 공을 수행해 온천으로 유명한 카를스바트(오늘날 체코의 카를로비 바리)에 갔는데 두 달 뒤에 돌아와 보니 청천벽력 같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사이 7월 7일 아내가 갑자기 사망해 이미 매장돼 있었던 것이다. 다음 해 1721년에는 라이프치히 남서쪽 30㎞ 떨어진 작은 도시 차이츠에서 온 20세의 소프라노 가수 안나 막달레나 빌케(1701~1760)가 쾨텐 궁정에 고용됐는데 36세의 궁정음악감독 바흐는 그녀와 눈이 맞아 그해 12월 3일에 결혼했다. 첫 번째 아내와 사별한 지 17개월 만이었다. 쾨텐에서 바흐가 살던 집 앞에 세워진 바흐 기념상. 이어서 그해 12월 11일에는 레오폴트 공이 안할트-베른부르크의 영주 딸 프레데리카 헨리에테와 결혼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녀는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레오폴트 공이 ‘하인들’과 함께 ‘무의미한 짓’을 하는 것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흐는 결혼 이듬해 1722년 아내에게 귀한 선물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음악수첩이다. 바흐는 자신이 작곡한 건반악기 초보 연주자를 위한 음악의 자필 악보 모음을 그녀에게 헌정했다. 1722년 안나 마리아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음악수첩 중 바흐의 자필 악보. 바흐는 쾨텐 궁정의 상황이 예전 같지 않았기 때문에 속히 다른 도시에서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지위를 확보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마침 라이프치히의 토마스 음악학교의 음악감독 자리가 비었다. 드디어 1723년 바흐는 쾨텐 생활을 모두 접은 후 가족을 데리고 더 넓은 세계로 갔다. 라이프치히에 자리 잡은 바흐는 1725년에 다시 한번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음악수첩을 헌정했다. 두 번째 수첩에는 모두 42곡이 수록돼 있는데 그중 4번째 곡 ‘미뉴에트 G장조’는 건반악기 초보자들이 연주하기에 좋을 뿐만 아니라 선율 따라 노래 부르기에도 좋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런데 이 곡은 바흐가 작곡한 것이 아니라 당시 드레스덴의 오르가니스트 크리스티안 페촐트(1677~1833)의 작품이다. 다시 말해 첫 번째 음악 수첩에는 바흐의 곡만 실려 있는 반면, 두 번째 음악 수첩에는 바흐뿐만 아니라 다른 작곡가들의 곡도 다수 수록된 것이다. 안나 마그달레나도 바흐에게 큰 선물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전처소생 아들 네 명을 정성스럽게 키웠을 뿐만 아니라 1723년부터 1742년까지 자그마치 13명의 자식을 낳았으니 말이다. (그중 7명은 어린나이에 죽었다) 바흐의 자식 중 나중에 유명한 음악가가 된 인물이 여럿 있다. 빌헬름 프리데만과 카를 필립 에마누엘은 첫 번째 결혼을 통해, 요한 크리스토프 프리트리히와 요한 크리스티안은 두 번째 결혼을 통해 얻은 아들이었다.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1735~1782)는 나중에 런던에서 활동했는데 그곳을 방문한 어린 모차르트에게 크게 영향을 끼친 장본인이기도 하다.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culturebox@naver.com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수교 32주년 한·베트남, 운명적…

한·베트남 양국 최고 통치자의 상호 국빈방문 통해 최상의 관계로 발전

수교 32주년 한·베트남, 운명적 동반자관계로 힘찬 시동

한·베트남 양국 최고 통치자의 상호 국빈방문 통해 최상의 관계로 발전 가장 주목할 부분은 민간차원서 서로에 대한 애정과 든든한 신뢰 구축 양국은 마치 운명적이라 할만큼 강력한 문화적 역사적 공감대가 존재 양국의 문화, 지역, 청소년 등 분야별, 계층별 분야로 적극적인 교류 필요 한국과 베트남이 올해로 수교 32주년을 맞는다. 한국과 베트남 관계를 설명하려 들면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어쩌면 그만큼 매우 독특하고 특수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권성택 (사)한베경제문화협회(KOVECA) 대표 외교적으로는 2022년응우옌 쓰언 푹(Nguyen Xuan Phuc) 당시 베트남 국가주석의 국빈방한과 2023년 윤석열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방문에 이은 보 반 트엉(Vo Van Thuong) 현 국가주석과의 정삼회담을 계기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넘어서서 포괄적 동반자 관계라는 최상의 관계로 발전하였다.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익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 국가간의 관계다. 냉정하다 못해 살벌한 것이 외교다. 이런 엄연한 국제환경 속에서 수교 이래 32년 동안 한국과 베트남 양국이 이룬 성과는 외교사적 사건으로 기록할 만한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이제는 이 토대 위에 항구적인 양국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좀 더 체계적인 미래 비전으로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또 역사를 통해 오늘을 살피고 미래를 설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어제가 없는 오늘이 있을 수 없고 오늘이 없는 내일은 더욱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역사다.한국과 베트남이 지금까지이룩한 성과는 여러분야에서 폭넓게 이뤄졌지만 가장 주목할 부분은 민간차원에서 서로에 대한 애정과 든든한 신뢰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혹자는 한국과 베트남 관계를 사돈지간이라 부르기도 하고 형제의 나라라 부르기도 한다. 베트남을 한번이라도 방문했거나 베트남 사람을 만나 본 한국인은 무조건 베트남과 베트남 사람을 좋아한다. 그것은 두 민족 간에는 다른 그 어느 민족에서도 느낄 수 없는 두 민족만의 고유한 정(情)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두 국가 사이에는 마치 운명적이라 할만큼의 강력한 문화적 역사적 공감대가 존재한다. 두 나라는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민족, 수 없는 국가들 속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매우 유사한 역사를 담고 있다. 강대국들로부터 무수한 침탈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며 발전해 온 사실까지 비슷하다. 바로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공감대에 대한 상호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면 양국이 항구적인 우호친선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를 유지하고 운영하는데 있어서는 고유의 체제와 정책적 차이점이 존재한다. 때로는 그것들로 인해 서로 대립하고 충돌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2020년 코로나 상황 초기 국적기 회항사건으로 인한극한 감정이 극단적 양상으로 확대돼 상대를 폄하하고 증오하는 위험한 상황으로까지 치달은 적이 있었다. 인터넷과 유튜브를 뜨겁게 달군 그 파장은 오래도록 남아 일부 유튜버들의 상업적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한국과 베트남 관계의 불편을 조장하여 진실이 아닌 거짓된 정보들을 선동하며 역사에 돌이킬 수 없는 범죄행위를 강력하게 지적하는 바이다. 돌이켜보면 정책의 집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미세한 차이가 오해를 불러 일으켰던 것인데 이런 문제들은 서로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교감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공공 외교로서는 채울 수 없는 간극을 메꿀 수 있는 방법은 앞서 언급한대로 두 나라 역사와 문화에 흐르는 공존의 가치를 창출하는 노력의 하나로서 적극적인 민간교류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서로 만나 정체성을 확인하면 교감이 이뤄지고 결국은 더 큰 협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명하다. 때문에 지금까지 한국과 베트남 교류의 중심 축이 경제교류였다면 이제는 양국의 문화, 지역, 청소년 등 분야별, 계층별 분야로의 교류에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특별히 미래 세대의 주인공인 청소년 교류야 말로 미래의 양국 관계를 담보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한 적극적 노력을 제안한다. 이미 베트남 청소년들에게는 한류를 통해 한국이 낮 설지가 않고, 한국 청소년들도 코로나 이전 한국인 관광객 수 백만명이 방문한 나라가 베트남이었다. 이제는 한국에 보편화 돼 있는 베트남 쌀국수와 베트남 커피로 이미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친숙하게 다가와 있기 때문에 우선은 어떤 형태로든 양국 청소년들의 만남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미래 아시아의 주역으로서 한국과 베트남의 청년들이 갖는 공동체 의식과 공존의 가치를 인식하면 한국과 베트남 관계는 더 깊고 더 뜨겁게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코로나로 잠시 서먹서먹 했었던 양국관계가 수교 32주년를 맞기까지 다양한 이벤트를 통한 의미를 만들었고 완결판으로한·베트남 양국 최고 통치자의 상호 국빈방문을 통해 불꽃이 재 점화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한국은 베트남을 꼭 필요로 하고 베트남에 있어서 한국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분명히 인식된 만큼 이젠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선 상호보완의 운명적 관계로의 발전을 위한 힘찬 시동을 기대해 본다. 권성택 대표 -(사)한베경제문화협회(KOVECA) #(사)한베경제문화협회 #권성택대표 #권성택상근부회장 #KOVECA #수교32주년한·베트남운명적동반자관계로힘찬시동 #수교32주년한·베트남 #운명적동반자관계 #(사)한베경제문화협회(KOVECA) #한국방송신문협회

간첩이 갑자기 늘었냐고? [매일경…

20230118_6gSggK.jpg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18일 북한과 관련 있는 이른바 '지하조직'에 민주노총 간부가 가담한 혐의로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에 대한 압수색을 했다. 민노총 간부 A씨가 최근 방첩당국이 수사 중인 이른바 북한 연계 지하조직에 가담한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 KBS 방송 화면 캡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물리력을 보유한 집단은 국군이다. 그러나 한국 군대의 물리력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쓰일 일이 없다. 한국은 쿠데타를 졸업한 지 40년도 넘었다. 계엄령이 발동될 일도 없다. 계엄령 전에 정권이 몇번은 고꾸라질 것이다. 현실적으로 대한민국 내부에서 가장 큰 물리력을 보유한 집단은 민노총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조합원이 100만명을 헤아리고 마음먹으면 경제를 올스톱시킬 수 있다. 정치 파업은 불법이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 그 자체로 정권퇴진 운동이 된다. 그들은 어울리지도 않게 반미, 반일 집회를 조직하고 이끈다. 그들의 물리력은 늘 우리 체제 내부를 향한다는 것이 군과 다른 점이다. 그러니 군대보다 몇 배, 몇십배 무섭다. 박근혜 정권을 실제 끌어내린 힘은 어디에서 나왔나. 나는 민노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민노총의 일부 간부들이 북한과 접선을 하고 지령을 받아 정치 집회를 선동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물리력이 북한의 지휘로 작동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북한의 지시로 총파업을 벌이고, 반미집회를 열고, 정권퇴진 운동을 벌이고, 대선·총선에 개입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민노총의 친북 성향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그 수뇌부를 오랫동안 NL 주사파들이 장악해 왔다. 그들의 성명이 북한 노동당의 그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때도 자주 있었다. 그러나 친북은 친북이고, 간첩은 간첩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친북질은 할 수가 있다. 멍청한 사람들 중에 그런 친북자들이 꽤 된다. 잘못된 독서, 유치하고 오도된 민족 관념, 무식에 기원한 용감으로 북한을 두둔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있다. 그러나 멍청한 것이 불법은 아니다. 가급적 그런 멍청이들이 나오지 않게 역사 교육을 똑바로 하는 것 외에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간첩질은 다르다. 그것은 이적이고 반역이다. 세상에 반역을 처벌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당연한 것이 반역을 그대로 두고서 살아남은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간첩질을 처벌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망할 것이다. 우리 국민 중에 친북은 아니지만 북한을 동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고, 저 거지 같은 애들이 뭘 할 수 있겠어.’ 분명히 알아야 한다. 북한이 민노총만 제대로 부린다면 그들이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는데 굳이 핵을 쓸 필요가 없다. 지난 정권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원의 민노총 수사에 대해 이런 촌평을 내놓았다. “간첩 이야기가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데, 갑자기 대한민국에 간첩이 급격하게 많아진 것인지 알 수 없다.” 이게 대한민국의 숙환이 아닌가 한다. 간첩에 놀라지 않는 병, 간첩보다 간첩 잡는 동기를 의심하는 병 말이다. 국정원은 간첩 잡는 조직이다. 그들이 이번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한 배경에 간첩 수사권을 계속 보유하려는 동기가 섞여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문제가 되나. 모든 조직은 조직의 유지를 위해 일한다. 진짜 문제는 국정원이 민노총의 간첩 혐의를 진즉에 포착하고도 지난 정권 눈치를 보느라 지금에 서야 터뜨렸을 가능성이다. 간첩을 보고도 잡지 못하는 나라. 모골이 송연해지는 얘기다. 간첩이 갑자기 늘었냐는 윤건영 의원의 비아냥은 섬뜩하다. 이유를 알만한 사람이 천연덕스럽게 묻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매일경제 1월 21일 '노원명 에세이' 스크랩]

[뉴스해설] 거리두기 전면 해제 …

2022-04-18 11;45;08.jpg

2년 이상 계속되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오늘(18일)부터 사실상 해제됩니다. 2020년 3월 거리두기가 시작된 후 25개월 만입니다. 먼저 10명까지 허용되던 사적모임 인원제한과 다중이용시설 영업시간 12시 제한 조치가 풀립니다. 299명까지 허용되던 행사와 집회 인원 제한도, 수용인원의 70%까지 허용되던 종교시설 인원 제한도 해제됩니다. 25일부터는 영화관 실내 체육시설 등에서 음식물 섭취도 가능해 집니다. 다만 마스크 착용 의무는 일단 현행대로 유지됩니다. 실외 마스크 착용은 2주 정도 더 상황을 지켜본 뒤 다시 검토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의 배경은 오미크론 대유행이 정점을 지나고 뚜렷한 감소세로 전환됐다는 판단입니다. 방역 당국은 금요일 발표 기준 확진자가 7주 만에 20만 명 아래로 떨어졌고 위중증 환자 수와 병상 가동률 감소 그리고 백신 접종률과 치명률 추이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지속적인 감소세가 이어진다면 의료체계 대응능력도 충분하다는 판단입니다. 코로나19 감염병 등급도 오는 25일부터 현재 1급에서 2급으로 조정됩니다. 결핵, 홍역 등과 같은 2급 감염병이 되면 7일간의 격리 의무와 재택 치료도 사라지게 됩니다. 다만 정부는 단계적 의료체계 전환을 준비하기 위해 25일부터 4주간은 확진자 7일 격리, 고위험군 재택 치료, 치료비와 생활비 지원 등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종식이 아니라 풍토병 전환 다시 말해 위드 코로나의 시작이라는 점도 명심해야 합니다. 새로운 변이 발생과 재유행 가능성도 여전합니다. 또 지속적인 소규모 유행이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위험도가 높은 60대 이상 고령층의 4차 접종을 서둘러야 하고 일반 국민들은 마스크 착용, 실내 환기, 손 씻기 등 일상 방역에 더욱 충실해야 합니다. 기다리던 일상 회복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소중한 일상을 온전히 회복하려면 코로나19의 재확산 방지를 위해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해야 합니다. [사진 = KBS 방송 화면 캡처]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