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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 놀리지 말고 ‘전기차 충전기’로 활용…통할까?

기사입력 2023.08.1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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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봇대에서 전기 끌어다 쓴 전기차…도둑 충전?

    승용차 한 대가 전봇대 옆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상한 점이 눈에 띕니다. 전봇대에 연결된 전깃줄이 차에 꽂혀 있네요. 전봇대를 이용해 전기차 충전을 하는가 봅니다.

    아이디어가 넘치시는 분들이라면 어쩌면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해 보셨을 수도 있을 겁니다. 전기차 충전기가 늘상 어딜 가든 있는 건 아닌데, 이미 전기가 연결된 전봇대에 전선을 꽂으면 안 되나?

    그런데 그걸 실제로 실행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겠죠. 상식을 초월하는 사진에 누리꾼들은 '전기 도둑 아니냐?' '경찰과 한전에 신고해야 한다'며 떠들썩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 현실이 된 '전봇대 전기차 충전기'

    그런데 이렇게 전봇대를 이용해 전기차를 충전하는 생각, 정말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사진처럼 전봇대에 무턱대고 전선을 연결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충전기를 설치해 쓰는 겁니다.

    이런 '전봇대 전기차 충전기'는 몇 년 전부터 국제 전력기술 박람회 같은 곳에서 선보였는데요. 지난해 부산에서 본격적으로 설치가 시작됐습니다. 한국전력과 부산시가 협약을 맺고 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17개소에 마련됐습니다.

    지난해 부산 구도심에 설치된 전봇대 전기차 충전기의 모습.지난해 부산 구도심에 설치된 전봇대 전기차 충전기의 모습.

    ■ 왜 전봇대인가? "구도심은 전기차 충전 사각지대"

    신기하다는 이유 말고, 왜 이런 아이디어를 낸 걸까요? 부산의 전봇대 충전기가 대부분 구도심 지역에 설치됐다는 데서 단서가 엿보입니다.

    전기차 충전기의 대다수는 아파트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아파트는 충전기 설치가 의무화돼 있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아파트 거주자들은 자택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 이른바 '집밥'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독주택이나 빌라에 사는 이들은 사정이 다릅니다. 운이 좋으면 주변 공공기관 같은 곳에 충전기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충전 인프라를 늘리고 있지만, 한계가 뚜렷합니다.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 살며 전기차 택시를 모는 서승환 씨는 "충전기를 마련해 겨우 '집밥' 체계를 구축했다"면서도 "주택가에는 충전기를 쉽게 찾아볼 수 없어서, 집 근처 충전기가 없는 사람들은 전기차를 타기가 매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 전력 공급 쉽고, 기존 주차면 이용

    이런 상황에서 전봇대를 이용하는 건 구도심 지역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늘리는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주차면이 마련돼 있는 길거리의 공영주차장에 설치하기 때문에, 따로 자리를 확보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충전기를 설치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인 '전력 공급'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국외에서도 전봇대 충전기가 늘고 있습니다. 국제 환경 연구기관인 세계자원연구소(World Resource Institute)의 2021년 보고서를 보면, 미국 로스엔젤레스에는 전봇대 충전기 44개가 설치돼 있고 매사츄세스 주의 멜로즈에도 15개가 있습니다. 전봇대 충전기는 공간 문제에서 자유로운 데다 설치비도 절감할 수 있다고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전봇대 전기차 충전기의 장단점을 분석한 세계자원연구소의 보고서. 2021년.전봇대 전기차 충전기의 장단점을 분석한 세계자원연구소의 보고서. 2021년.

    ■ 부산에 이어 광주도 도입

    부산에 이어 광주도 '전봇대 충전기'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이유입니다. 광주광역시 수요 조사 결과, 5개 구에서 130곳이나 신청할 만큼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광주의 전기차 충전기 6,612개 가운데 77%인 5,097개가 아파트에 있는 만큼, 광주도 사정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한전은 현장 조사를 통해 이 가운데 19곳을 골랐습니다. 동구 동명동, 서구 화정동, 광산구 우산동 등의 주택가가 선정됐습니다. 부지 선정은 끝났고 올해 말까지 설치가 완료될 예정입니다.

    광주광역시가 전봇대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려고 준비 중인 동구 동명동의 한 공영주차장.광주광역시가 전봇대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려고 준비 중인 동구 동명동의 한 공영주차장.

    박서연 광주광역시 친환경차전환팀장은 "이런 '전주 거치형 전기차 충전기' 설치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주택가 운전자분들의 충전 불편이 다소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 해결 과제는 '주차난 심화 우려'

    전봇대 전기차 충전기가 계획처럼 구도심 전기차 인프라 확충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한 가지 걸림돌이 있기는 합니다. 주차난 문제가 심화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구도심은 주차 면수가 부족하죠. 공영주차장 자리 하나 하나가 아쉬운 지역도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차면 2개를 전기차 충전 전용석으로 만들면 불만인 분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실제 부산시는 올해 전봇대 전기차 충전기를 확충하려고 했지만, 민원 우려로 자치구의 신청은 저조하다고 밝혔습니다.


    실험적인 구상인 만큼 사업을 해 나가면서 고칠 것은 고치고, 좋은 점은 강화해야겠죠. 2016년부터 서울 등지에 설치됐다가 안전 사고 우려 등으로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철거된 '공중전화부스 전기차 충전기'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세심한 관리도 필요해 보입니다.

    전봇대 충전기에 대한 세계자원연구소 보고서는 마지막 문장을 "모든 도시에 딱 맞지는 않을 수 있지만, 전봇대 전기차 충전기는 간과되지 말아야 하는 친환경적인 방안이다"라고 썼습니다. 특별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조금 더 친환경적인 세상을 만들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전봇대 충전기. 어쩌면 이런 작은 시도들이 모여 탄소중립에 한 발 더 가까워지는 건 아닐까요.

    [연관 기사] 구도심 전봇대, 전기차 충전기로 변신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739253

     

    [글, 사진 = KBS 뉴스 8월 11일 자 양창희 기자 보도 기사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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