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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일 듯 꺾이지 않는 물가…우리나라 물가 3대 복병은?

기사입력 2023.10.3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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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잡힐 듯하던 물가가 다시 저만치 달아나는 모습입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달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하며 올해와 내년 물가승상률 전망치가 지난 8월 내놓은 전망을 웃돌 가능성이 커졌다고 밝혔습니다.

    당초 하반기 물가를 전망할 때 예상 변수에 없었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벌어졌고 이 사태가 언제까지, 어떤 형태로 이어질지 예단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향후 물가 경로 예측은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한 경기 둔화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세계 각국은 통화 긴축 정책을 펴왔습니다. 이렇게 긴축을 중심으로 경제 정책을 펴며 물가상승률을 낮춰가는 것을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 통화 긴축의 효과가 시차를 두고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기여를 한 건 에너지 가격입니다. 급등세를 보였던 에너지 가격이 점차 안정되면서 각국의 디스인플레이션은 다소 순조롭게 진행돼 왔다는 평가입니다.

    하지만 최근 국제 정세 불안에 따른 유가 상승 우려와 함께 근원물가(식품 및 에너지를 제외한 상품 및 서비스 판매가)의 경직적인 흐름 등이 나타나면서 예상과 달리 물가 목표로의 수렴 과정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 '조기 금리 인상' 물가 오름세 꺾었지만...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심화 됐던 기간 우리나라와 일부 신흥국들은 상대적으로 조기에 금리를 인상하며 대응했습니다. 골드만삭스 등 투자은행들은 이런 신속한 금리 인상 대응이 이들 국가의 인플레이션을 둔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이와 비교해 더 늦게 금리 인상을 시작한 미국과 유로 지역은 통화 긴축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늦게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금리 인상 시작 시점이 주요국 가운데 가장 늦었던 유로 지역 근원물가 상승률은 올해 3월에서야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한국은행은 통화 긴축이 지연되면서 지난해 금리 수준이 '테일러 준칙(물가상승률이 1%p 올라가면 중앙은행이 명목금리를 1%p 이상 인상해야 한다)'으로부터 이탈 정도가 컸던 국가일수록(물가가 올랐는데도 걸맞은 통화정책을 펴지 않은 나라일수록) 최근까지도 물가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다고 분석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수준이 높았던 기간 빠르게 금리를 인상하며 대응한 우리나라의 통화 긴축 정책이 고공 행진하던 물가를 주춤하게 한 건 틀림없어 보입니다.

    ■ 더딘 물가 둔화 속도, 왜?


    그런데 주요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빠르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둔화 속도를 보면 우리나라의 목표수렴률(디스플레이션 진도율)은 60.5%입니다. 미국(76.1%)과 유로 지역(73.3%)에 비해 낮습니다.

    한국은행은 이에 대해, 먼저 미국과 유로 지역의 물가 정점 수준이 우리나라보다 더 높았던 만큼 떨어지는 속도 역시 가파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 비용 상승 압력 계속…고유가, 전기요금·유류세 정책도 변수


    글로벌 물가 급등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던 공급 충격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빠르게 완화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원자재 대외의존도가 높은 데다 환율도 상승하면서 비용상승 압력의 파급 영향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유가 상승 충격이 근원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추정한 연구를 보면 미국보다 우리나라와 유로 지역에서 충격의 지속성이 1~2년 이상으로 미국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실제로 이런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겁니다.

    한은은 팬데믹 초기에 공급 충격을 완충했던 전기 ·가스 요금 인상 폭 제한이나 유류세 인하 등의 정책 지원도 비용 압력을 미루면서 향후 물가 하락 흐름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 수요 측면 물가 압력은 약해

    한국은행은 수요 측 물가 압력이 높지 않았던 점이 우리나라 디스인플레이션(물가 하락)의 주요 동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합니다.


    대표적으로 팬데믹 기간 주요국 재정 지출을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여타 선진국에 비해 그 규모가 작았는데요. 전례 없는 규모의 재정지원으로 누적된 가계 초과저축과 탄탄한 고용 등을 바탕으로 민간소비가 회복되면서 오히려 근원물가가 더디게 둔화되고 있는 미국과는 차이를 보이는 지점입니다.

    IT 부문과 중국 경기의 부진, 고금리에 따른 가계의 원리금 부담 증대 등으로 수요 측 물가 압력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점도 물가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노동 수급 상황이 양호하고 임금상승 압력이 다른 국가에 비해 낮은 점도 특징입니다. 우리나라는 팬데믹 이후 여성과 고령층을 중심으로 노동 공급이 빠르게 회복되면서 노동수급 경직도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은 상황입니다.

    미국과 유로 지역에서는 높은 임금 오름세로 인건비 비중이 큰 서비스 품목을 중심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이어지는 데다 노동생산성 저하로 단위노동 비용이 높아지면서 기업의 가격 전가 압력도 커지고 있습니다.

    ■ "2%대 물가 목표 도달 시점, 더 늦어진다"

    정리하면 우리나라는 수요 측 압력 약화, 노동수급 상황 개선 등에 힘입어 추세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의 완만한 둔화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문제는 공급 측면, 즉 비용 상승 압력인데 최근 유가 및 농산물 가격 상승 추세 등을 고려할 때 물가 둔화 흐름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게 한국은행의 진단입니다.

    국제유가가 높은 수준을 지속하거나 과일과 채소 등을 중심으로 크게 오른 농산물 가격이 예년과 다르게 계절적으로 안정되지 않는다면 소비자물가 상승률 둔화 흐름이 재개되는 시점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런 분석 등을 고려할 때 다음 달 발표될 물가 전망도 수정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한국은행이 8월에 전망한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5%, 내년에는 2.4%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해외 주요 기관들은 2%대 물가 목표 수렴 시점을 우리나라의 경우 2025년 상반기, 미국은 2026년경에나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한은은 팬데믹 이후 지난해까지 대부분 국가에서 대내외 충격의 물가 영향을 과소평가하면서 물가 전망을 낮추는 경향을 보여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때문에 대내외적으로 불확실성이 한층 커진 지금 시점에선 보다 신중하게 물가 상황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최근 IMF 보고서에 언급된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1970년대 이후 주요 56개국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 사례를 조사한 결과 60%만이 5년 이내에 해결됐으며, 디스인플레이션이 실패한 경우는 대부분 '성급한 승리 선언'에 기인했다는 내용입니다.

    물가와 예상보다도 훨씬 더 긴 싸움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을 강조하는 예고로도 읽히는 대목입니다.

    (그래픽: 김홍식)

     

    [글, 사진 = KBS 뉴스 10월 31일 자 손서영 기자 기사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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