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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폐소생이냐, 사형선고냐’…기로에 선 네타냐후 [KBS 세계엔]

기사입력 2023.11.1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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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전쟁으로 가자지구 민간인만 만 명 넘게 숨졌습니다. 국제사회의 휴전 압박에도 굳건히 전쟁을 밀어붙이는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비판을 의식해 최근 미국의 '일시적 교전 중지'를 받아들이긴 했는데요. 그러나 이미 미국과의 이견이 표출됐고, 이스라엘 안팎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전쟁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네타냐후의 정치 생명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단 얘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미국 균열 드러낸 '교전 중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은 미국입니다. 그러나 전쟁 초기엔 한 몸처럼 움직이던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에도 점차 삐걱거리는 모습이 노출됐습니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인도적 지원과 인질 구출을 위한 '일시적 교전 중단'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무수한 민간인 피해가 생기자 국제사회는 휴전을 주장하고 있는데요. '일시적 교전 중단'은 미국이 내놓은 일종의 절충안입니다.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현지 시간 지난 3일, 이스라엘을 방문해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났다. (사진 출처: UPI)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현지 시간 지난 3일, 이스라엘을 방문해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났다. (사진 출처: UPI)

    현지 시간 3일, 미국의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스라엘을 다시 방문해 공개적으로 일시적 교전 중단을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가 곧바로 '휴전은 없다'고 밝혀 퇴짜를 놨단 평가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미국의 거듭된 설득에 네타냐후는 이후 교전 중지를 위한 '여건을 살펴보겠다'고 밝혔고, 결국 매일 4시간씩 교전을 중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맹방인 미국의 뜻을 아예 무시하기란 네타냐후 총리로서도 쉽지 않았을 거란 추측이 나옵니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의 균열이 또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같은 불협화음이 두 나라의 전쟁에 대한 목표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없애기 위해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할 의향이 있는 반면, 미국은 이란과 러시아, 중국에 대항해 동맹국들을 단결시키는 데 목표가 있단 겁니다.


    ■가자 재점령? 전후 구상 '동상이몽'

    전쟁이 길어지면서 논의는 이제 전쟁이 끝난 뒤 가자지구를 어떻게 할 것인지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네타냐후 총리의 야심은 ABC뉴스 인터뷰에서 살짝 비쳤습니다.

    전쟁 뒤에 누가 가자지구를 통치하느냐는 질문에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이 전체적인 안보 책임을 무기한으로 가질 것으로 본다"고 답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책무를 가지지 않아서 지난달 7일, 하마스의 테러가 분출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영국 가디언 등은 네타냐후 총리가 종전 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재점령하고 무기한 통치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가자 점령은 큰 실수'라는 앞선 발언과 전쟁 초기 재점령은 없다고 밝혀온 이스라엘의 기조에서 모두 벗어난 발언입니다. 백악관은 곧바로 '가자의 미래에 관한 논의가 진행 중이며 어떤 것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진화에 안간힘입니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전쟁이 끝난 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통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 데 이어 익명의 이스라엘 고위 관리가 로이터통신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재점령하거나 오랫동안 통제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두 국가 해법'에 대해서도 이스라엘과 합의를 이루긴 힘들 것으로 보이는데요. 미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독립 국가로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을 말하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아예 언급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거부의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에게 '후계자에게 나눌 교훈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조언해 사실상 하야를 종용했다는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의 보도도 있었는데요. 백악관이 부인하긴 했지만, 이스라엘 편엔 서 있을 수 있어도 네타냐후의 뒤까지 봐줄 순 없는 미국의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최근 이스라엘과의 엇박자에 대해 "우방이라고 모든 단어의 모든 뉘앙스에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치적 성향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는 항상 모든 현안에서 같은 위치에 있지는 않다"고 짚었습니다.

    현지 시간 지난 7일에도 네타냐후 총리를 규탄하는 시위가 이스라엘 예수살렘에서 열렸다. (사진 출처:AP통신)
     현지 시간 지난 7일에도 네타냐후 총리를 규탄하는 시위가 이스라엘 예수살렘에서 열렸다. (사진 출처:AP통신)

    ■전쟁으로 바닥 찍은 이스라엘 민심

    이스라엘 국민들이 네타냐후 총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 냉혹합니다. 이스라엘 국민의 76%가 네타냐후 총리의 퇴진을 원한다는 이스라엘 방송 '채널 13'의 여론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응답자의 64%는 전쟁이 끝나는 대로 총선을 치러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현지 시간 지난 4일에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시내에서 네타냐후 총리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도 일어났습니다. 네타냐후 총리 집 앞에는 "당장 수감하라"는 구호까지 등장했다고 합니다.

    싱크탱크 이스라엘민주주의연구소(IDI)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봐도 하마스와의 전쟁을 이끌 지도자로서 네타냐후 총리를 신뢰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고작 7%입니다. 응답자의 74%는 이스라엘군 지휘부가 전쟁을 이끌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하마스를 아예 궤멸시키겠다는 목표는 대체적으로 지지하지만 네타냐후 지지는 또 다른 문제란 점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 기관이 하마스 공습 일주일 뒤에 실시했던 여론조사에서 유대계 이스라엘인들의 20.5%,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은 7.5%가 정부를 신뢰한다고 답했었는데요. 한 달도 안 돼 지지율이 더 떨어진 겁니다.

    하마스의 기습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결국 전쟁의 책임은 네타냐후 총리에게로 향합니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는 지금까지 개인적인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네타냐후가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서사를 구축하고 있는데 10월 7일 실패의 책임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데 대부분 집중돼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네타냐후는 지난달 29일, 자신의 X(옛 트위터)에 '하마스의 움직임에 대해 어떤 사전 정보도 듣지 못했다'는 글을 올렸는데요. 군과 정보기관에 전쟁 책임을 돌렸다는 거센 비판에 네타냐후는 글을 내리고 사과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네타냐후의 발언이 또 논란을 불렀는데요. 전쟁 전 일어났던 이스라엘 예비군의 반정부 시위가 하마스의 공격에 빌미를 줬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네타냐후는 관련 보도를 부인했지만, 여전히 책임을 인정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자국민들을 향한 히브리어가 아니라 ABC뉴스 영어 인터뷰에서 "물론" 자신이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전쟁이 끝나고 관련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 게 전부입니다.

    전쟁 전에도 이미 나빴던 네타냐후에 대한 여론이 전쟁을 겪으면서 더 안 좋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지난해 말 다시 총리로 뽑힌 네타냐후의 극우 정책에 대해 거세게 반발해 왔습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두 차례 총리를 지내며 무려 16년 동안 권좌를 지켰고, 지난해 말 극우 정당과 손잡고 난 뒤 다시 선출됐습니다.

    네타냐후는 극우 정당과 함께 서안지구에 유대인 정착민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와 정부 자원을 배치해 왔습니다. 또, 자신의 부패 범죄를 무마하기 위해 사법부 권한의 축소를 추진했는데요. 이 당시 장장 9개월에 걸친 시위가 일어나며 예비군을 비롯한 이스라엘 국민들의 비판이 극에 달했습니다. 이 점을 고려하면 사실 전쟁이 네타냐후에게 잠시 시간을 벌어준 셈입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또, 과거 네타냐후가 봉쇄정책이라는 미명 하에 하마스로 하여금 가자지구를 통치하게 두고 비교적 온건한 서안지구 정부를 강화하지 않았다는 점을 짚었는데요. 이는 네타냐후가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에도 어느 정도 기여한 바가 크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목표대로 하마스를 이 땅에서 없애더라도 네타냐후를 향한 민심의 칼끝을 피해 가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그러나 유명한 이스라엘 정치 평론가 에후드 야리는 장담하고 있습니다. "네타냐후는 이미 정치적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고, 그건 추해질 것"이라고 말입니다.

     

    [글, 사진 = KBS 뉴스 11월 11일 자 허효진 기자 보도 기사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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